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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민족주의에 대한 아날로그 연민​​​​​​​

[시사브레이크 = 황의령 시민기자]

황의령 시민기자

글로벌, 포스트모더니즘, 모바일, 유비 쿼터스 따위와 같은 현대어들은 민족주의를 무슨 주행을 방해하는 도로 위 속도방지턱인 양 떨떠름해 하는 시선으로 쳐다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민족주의자들을 바라보니 세련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도 못해 후대에 비판을 받아온 위정척사파 정도로 취급을 하면서 말이죠.

‘이게 왜 이런 그릇된 궤적이 마치 균형인 것처럼 착각이 될까?’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봤더니, 그것이 혹시 오만잡종과 뜨내기들로 이루어졌다는 아메리카의 열등의식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내셔널리즘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지배를 하기 위해선 피지배층의 동경심을 자극해야 하니까요.

1958년 미시시피 대학교에 지원한 클레넌 킹이라는 아주 똘똘한 흑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는 억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배경을 살펴보니, 클레넌이 미시시피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판사결정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로 볼 수 있겠는데, 학자들은 흑인들이 백인보다 열등하고 범죄율이 훨씬 높으며 더러워서 질병에 걸린다는 주장을 여러 가지 통계를 만들어 사실로 만들어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무엇에 관해서든 충분한 논거를 저장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은 ‘참값’이 됩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패권자, 지배자를 동경합니다. 구글이나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대표적이죠. 가상 존재들의 글로벌 지향에 따라 그들의 자비심이 우리의 미래를 지배하길 바라는 일종의 심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붙게 되지요.

클레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민족주의라는 족보를 필터링해내는 건 아닐까도 싶습니다. 마치, 뉴요커가 되고 싶던 인디언들의 최후처럼 말입니다. 찬란했던 문명을 별것 아닌 양 저버리며, 글로벌의 불나방이기를 갈망했던 인디언들의 뒷매와 우리의 간격이 점점 좁아들고 있는 기분입니다.

바야흐로 우리의 뼈대도 모바일이 돼가고 있으니까요.

황의령 시민기자  webmaster@sisabre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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