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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지사 의로움을 담아 공분(公憤)하자[데스크칼럼] 분노만 가득 담은 분노표출은 담론 이끌어내기 힘들어

[시사브레이크 = 안중열 편집국장]  

안중열 편집국장

나치에 맞선 레지스탕스 출신이자 UN 인권위원회 대표였던 스테판 에셀이 펴낸 책 <분노하라>가 양극화의 폭압에 짓눌린 다수의 피해 민중을 각성시키고 있다. 2011년 이 책을 읽을 당시만 해도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할 정도로 전 세계가 분노의 열풍에 휩싸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비폭력주의자였던 에셀은 책을 통해 모국인 프랑스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상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더 큰 정의와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역사를 직시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프랑스 청년들에게 고한 메시지의 나비효과일까. 전 세계로 향하는 에셀의 메시지는 우리 나라에도 연착륙한다.

보수정권의 적폐에 억눌린 민중은 광장으로 모여 촛불로 분노를 표출한다. 수만 개로 시작해 수십만, 수천만의 촛불에 포위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내려온다. 정권교체를 견인했던 민중의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부당한 압제로 인해 깨져나간 삶과 고통에 분노하고 그 삶과 꿈을 다시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의로움이 노여움과 한 몸이 되어선 곤란하다. 단두대에 세운 정적을 보고 박수를 치고 싶은 본성을 단속하고 경계해야 한다. 벼랑 끝으로 몰아 가더라도 밀쳐내서야 되겠는가. 민중의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방향으로 향할 때 명분을 얻을 수 있겠으나 피의 대가를 얻기 위한 노여움은 '보복의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의분을 북돋은 혁명보다는 '분노 없는 의로움'의 가능성을 탐구한 프랑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대중에겐 '빵도둑'으로 더 유명한 장발장은 프랑스 사회의 각종 모순 부조리에 대해 분노의 수위를 조절하는 동시에 의로움도 유지한다.

장발장은 민중봉기의 한복판에서 시민군 편에서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뽐내지만, 정부군의 투구만을 정확히 겨냥해 사격, 아군의 피해를 만들지 않는다. 피아식별을 명확히 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분노의 소용돌이에 빠져 아군에게 총구를 겨눈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권하는 전체주의의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갑(甲)과 을(乙)대결구도가 언제부턴가 '을을 갈등'으로, 진보·보수(정당·정당) 간 프레임 대결이 양측 내부에서의 적자논리에 따른 분열로 비화되고 있다. 노여움만 가득 담다 보니 담론을 끌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다. 대중이 그들만의 리그에 관심을 접고 공분(公憤)을 하지 않는 이유다.

안중열 편집국장  jyahn@sisabre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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