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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아나키스트(Anarchist)의 출몰[데스크칼럼] 자신의 가치를 세워주던 영웅이 일그러지고 있다

[시사브레이크 = 안중열 편집국장]  

안중열 편집국장

무정부주의자, 탈권위자 혹은 무권위주의자, 반강압주의자. 폭력과 차별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아나키스트들은 일제식민지 시절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스탠스에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했다. 억압의 온상이었던 그 시절, 수많은 지식인들이 문학작품에 몰두하면서도 술에 기댔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당시와 흡사한 것 같다. 폭거에 항거한다는 명분으로 촛불을 들고 폴리스라인을 넘어간 시위대의 모습을 상기해보라. 애초 부패정권에 대항해 봉기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갈린다. 민족투사이기도 공권력을 무시하는 불법 시위대이기도 하다.

비단 광장에 비친 민중의 모습만 그렇지는 않다. 온라인에서도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적극적인 대응에 열광하면서도 폭력과 차별에 대한 미러링 방식이 못마땅하기도 하다. 오프라인에서의 폭력과 차별은 근거없는 비방(난) 등의 마타도어가 명확한데 온라인에서는 해학과 풍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민족의 과거, 현재,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무력감에 빠졌던 과거의 아나키스트들은 어느덧 광장에서, 온라인 게시판에서 다시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폭력과 차별이 가득한 사회에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과거 그랬던 것처럼 같은 방식의 대응도 부정한다. 혹자는 양비론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갈릴 것이다. 문학계에선 벌어진 '아나-볼' 논쟁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전술했듯 독립운동 진영에서 벌어진 방식의 문제로도 접근할 수 있다. 혹자는 태고적부터 반복돼온 지배구조의 모순에 대응하는 피지배 진영의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그대는 광장의 투사인가, 키보드의 워리어인가, 그게 아니라면 현대판 아나키스트인가. 때때로 우리는 광장의 투사처럼 행동하다가도 아나키스트처럼 보이고도 싶다. 광장에서는 진짜 투사로 빙의했다가도 간혹 아나키스트들의 상실감을 느끼는 이유다.

강력한 투쟁 노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다가도 방식에 대한 상실감이 공존하는 사회다. 따라서 각자의 철학과 가치를 인정한다면 굳이 시비를 가릴 필욘 없다. 그러나 철학과 가치가 흔들리거나 모호하다면 상황은 다르다. 광장의 투사도 키보드 워리어도 밑장 까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닌가.

주변도 필자도 가진 게 넉넉치 않으니 종종 상실감을 느끼지만, 꼭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처럼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니 살아오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불필요한 논쟁들에 빠지들곤 한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가면서 무언가(가치)를 하나 건질 때도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기자의 철학과 가치를 만들어주던 영웅들이 일그러지는 요즘엔 상실감만 깊어진다. 그래서 무력해 보이면서도 조금은 있어(?) 보이는 아나키스트로의 빙의를 시도한다.

안중열 편집국장  jyahn@sisabre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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